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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0억에도 의사들이 안간다

글로리컨설팅 2023. 6. 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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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사가 단독이라며 《“심장 전문의 없나요” 연봉 10억에도 의사가 안 옵니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청주의 한 병원이 연봉 10억 원에 심장내과 전문의를 모집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진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현재 심장내과 전문의의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왜 해당 병원장은 시세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제시했는지, 왜 현직 심장내과 전문의들이 지원하지 않았는지 등의 핵심 요소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기사에 전공의, 예방의학과 교수, 공공 병원장 등의 인터뷰가 녹아 있지만 이 사안의 당사자들은 아니었다. 해당 기사는 ‘10억 원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 의사들의 현실에 정부가 수가를 높여 심장내과 등 필수 진료과 의사들에게 돈을 더 줘야 인력난이 해소된다’는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등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결론 내렸다.

진정한 해결책은 ‘의대 정원을 늘리고’, ‘간호사가 의사 역할(PA·진료 보조)을 하도록 합법화’하며, ‘외국에서 의사를 수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제시한 사안들은 건설적으로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하지만, 그래도 이 사안의 진상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번 사안의 진상은 뭘까
심장 전문의의 공식 명칭은 ‘순환기내과 분과 전문의’인데,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1년 이상 심장 내과에서 전임의를 하면 인정받는다. 2년 차 이상의 심장내과 전임의와 교수와 ‘심장 내과 혹은 순환기 내과’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전문의는 모두 심장 전문의이다.

수도권 대학병원장에게 이들의 연봉이 얼마인지 물었다. 전임의는 1억 원 안팎이고, 교수는 1억 원~3억 원 사이라고 한다. 15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도 연봉 2억 원을 못 받는 심장 전문의 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심장 전문의들 사이에서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매우 껄끄럽지만 사안이 사안인 지라 밝힌다면서 연봉 3억 원~4억 원 사이라고 알려 주었다. 높은 연봉을 받는 대신 수준 높은 진료를 스스로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압박감이 있다고 한다.

청주의 한 병원이 제시한 연봉 10억 원은 ‘심장계의 메이저리거’ 연봉보다 2배 넘고, 서울의 15년 이상 경력 심장내과 교수보다 5배 높으며, 대학병원 2년 차 전임의보다는 무려 10배나 높다. 해당 병원은 특별한 경력이 없어도 된다고 공지했는데, 이 사안을 돈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것이 합당한 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연봉 10억 원을 주고도 적자를 면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적자이겠지요.”


해당 병원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심장 전문의에게 연봉 10억을 주면 당연히 적자라고 답한다. 적자를 각오하고서 모집했다는 것인데, 해당 병원이 뇌혈관 전문병원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뇌혈관센터와 심장센터가 병원의 양대 주축인데 1년 전 1명 있던 심장 전문의가 그만둔 이후 그 상태로 심장 센터를 1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

병원 홈페이지를 보면 지금도 ‘관상동맥질환, 협심증의 진료를 오전 8시 30분~오후 6시까지 하고, 공휴일에도 진료한다’는 공지가 그대로 있다. 심장 전문의가 없이 심장센터를 열고 있는 병원장의 일반화하기 어려운 절박함이 이 사안에 있었던 것이다. 

“1년만 해도 10억 원인데 왜 안 가십니까?”

“저희가 바보입니까?”


심장 전문의 몇 명에게 물었더니 바보 취급하지 말라며 성을 낸다. 연봉 10억 원의 근무 조건을 정확하게 간파하고도 간다면 바보라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 언급된 근무 조건은 ‘평일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 토요일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시, 일요일과 다른 공휴일은 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야간·주말 당직이 있다’는 조건이 덧붙여 있다.

기사는 이 부분을 언급 없이 넘어갔지만, 직접 근무할 심장 전문의는 꼼꼼하게 따져보기 마련이다. 의사의 진료는 외래와 응급실 근무로 나뉜다. 평일부터 토요일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외래 진료이고, 야간과 주말 당직은 응급실 근무를 말하는 것이다. 심장 전문의가 1명만 뽑힌다면 365일 24시간 동안 일하는 게 연봉 10억 원의 근무 조건이다. 이런 이유로 해당 병원은 3명을 모집한다고 했다. 그래도 심장 전문의들의 선택은 달라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심정지 환자가 오면 심폐 소생술을 한 후, 심장 초음파와 심장 혈관 검사를 하고 나서 스탠트를 삽입하는 것까지 연속해서 진행해야 환자를 살릴 수 있어요. 환자 1명에 네다섯 시간을 매달려야 하죠. 이런 환자가 밤에 오면 잠을 설치는 것에 그치지만 (이것도 나이 먹고는 힘들지만) 낮에 오면 외래 대기 환자는 누가 봅니까?

외래 진료가 환자들의 불만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이것은 고스란히 의사의 스트레스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심장 전문의 3명이라도 365일 24시간 당직 체계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중증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토스(일명 응급실 뺑뺑이)하지 않으려면 2명이 당직을 서는 게 안전합니다. 그렇게 되면 365일 중 2/3, 243일이 당직입니다. 혼자서 무리하게 응급 환자를 진료하면 의료 사고 위험성이 커지겠죠. 단 1건이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연봉 10억 원의 실제 소득액 6억 원이 모두 소송 비용으로 쓰일 겁니다.”



연봉 10억 원, ‘쁘띠성형 의사’는 되고, 심장 전문의는 안된다고?


암을 치료하는 전문의를 취득한 후 전임의 2년까지 완료한 후 교수 채용이 확정됐던 한 의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레이저, 보톡스, 필라 등으로 비교적 가벼운 피부미용을 진료하는 일명 ‘쁘띠 성형’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쁘띠 성형을 한 번도 배운 적 없었지만 사표를 제출한 후 6개월 만에 ‘쁘띠 성형 의원’을 단독으로 개원했다. 국내에서 쁘티 성형 사관학교의 원조 대형 성형외과 병원장에게 물었다.

“6개월 배우면, 쁘띠 성형 단독 개원도 가능합니까?”

“몇 개월 배우고 개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쁘띠 성형 개원은 따로 자격 조건이 없잖아요.”


쁘띠 성형 의사의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얕보고 개원했다가 수억 원을 손해 보고 문을 닫는 사례도 많지만 해마다 10억 원을 넘게 버는 쁘띠 성형 의사도 적지 않다. 내과 계열 전문의를 취득하고 쁘띠로 전향한 한 후배 의사는 페이 닥터로 있을 때 연봉이 10억 원이었고, 단독 개원한 후에는 그 두 배를 벌고 있다. 연예인과 함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쁘띠 성형 의사들이 돈 자랑 하는 것은 방송계에서 유명하다.

이처럼 ‘쁘띠 성형’ 의사들이 연봉 10억 원을 돌파한 지는 오래됐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심장 전문의 10억 원 모집 공고에 이토록 소란스러운 것일까? 연봉 10억 원, 쁘띠 성형 의사는 되고, 심장 전문의는 안 된다는 것일까? 의학적 난도가 높고 사회적 가치가 더 큰 곳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상식 아니던가? 이 기사를 접하며 여러 의문이 머리를 스쳐갔다. 생명을 살리는 의술일수록 오히려 싼 값이 매겨지는 역설적인 현실이 국내 필수 의료 붕괴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 제시가 가뜩이나 허덕이고 있는 심장병 응급 체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별도로 짚어볼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얼마나 벌어?’라는 질문보다 ‘국민이 의료비를 얼마나 내고 있어?’라는 물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질문의 주어가 국민일 때 국민을 위한 대답들이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지불하는 의료비는 높은데 국민이 받는 의료 서비스가 낮다면 의사가 적게 번다 한들 무슨 위로가 되겠으며, 반대로 국민이 내는 의료비는 낮고 국민이 받는 의료 서비스가 좋다면 의사의 소득이 높다 한들 무슨 질투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국민이 내는 의료비가 적정한지, 국민이 받는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은 지를 따지는 게 의사 소득에 대한 궁금증보다 우선일 것이다. 의사 증원, 의사 역할 PA, 공공 병원 등 여러 의료계 현안들 역시 질문의 주어가 국민일 때 국민을 위한 답이 나올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를 짚어 보겠다.